'조직문화'에 해당되는 글 20건

  1. 2016.01.13 행복 Project Chapter 2!! 남자화장실 개선 by 사람이 전부다
  2. 2016.01.04 판교 IT회사의 흔한 종무식 by 사람이 전부다
  3. 2015.12.16 여자화장실을 호텔처럼!!! 행복 프로젝트 Chapter 1 by 사람이 전부다
  4. 2015.07.30 <사원인터뷰>PUMP팀 윤정우프로 by 사람이 전부다
  5. 2015.06.24 <사원인터뷰>프리즘팀_이혜진대리 by 사람이 전부다
  6. 2015.06.01 <사원인터뷰>기획팀 변형준프로 by 사람이 전부다
  7. 2015.05.28 <사원인터뷰>기획팀 황찬혁과장 by 사람이 전부다
  8. 2015.05.07 <사원인터뷰>경력사원 모바일챌린지팀 황선원 과장 by 사람이 전부다
  9. 2015.04.24 <복지>무료조식을 시작하다!! by 사람이 전부다
  10. 2015.04.08 <사원인터뷰>경력사원 재무팀 김홍기 프로님 by 사람이 전부다

저번에는 여자화장실을 개선해 봤으니 이번에는 남자화장실을 개선해 보려고 합니다.

 

우선 남자화장실의 불편함을 찾아봐야 겠죠.

 

 

변경 전의 남자화장실

 

 

 

뭔가 없다고 느끼시나요?

 

네네!! 칸막이가 없습니다.

 

칸막이가 없을때의 불편함은 남성분들은 충분히 이해하리라 생각 합니다.

 

그래서!!!

 

칸막이를 설치해 보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역시나!!

 

저비용 고효율!!!

 

칸막이 시공업체를 찾아보니 인건비 자재비 다 포함해서 40만원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40만원??!!! 

 

40만원??!!!! 부가세별도??!!!!

 

 

괜찮습니다. 바로 노행복 대리가 있기 때문에 우린 괜찮습니다.

 

 

 

 

 

 

이 것이 일반적인 소변기 칸막이 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정을 하려면 바닥을 뚫어야 해 드릴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럼... 나중에 원상복구를 해줘야 하기 때문에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격이 너무 비쌌습니다. 또, 디자인도 안이뻤어요.

 

 

그래서 노행복 대리가 자재를 수급하기 위해 직접 출발했습니다.

 

어디로?? 시흥 자재 공구단지!!!

 

 

이 곳엔 뭔가 다 있을 것만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크릴 공장이 있었고 원하는 사이즈를 말하고 자재를 말해 제단해 달라고 딜을 하기 시작했다.

 

 

 

아크릴 공장 사무실 모습

사무실 안은 쉴세없이 울리는 전화와 손님들의 요청쇄도로 정말 정신이 없었다.

 

다들 몇 백 키로, 톤 단위로 주문하는 것만 같았는데 소량주문(아크릴 2장)을 당당히 외쳤다.

 

 

자재를 선택 하고 원하는 사이즈로 제단이 들어갔다.

 

 

 

 

 아크릴 공장 내부 모습(외국인 노동자들이 제법 보였다.)

 

아크릴을 우리가 원하는 사이즈로 구했고, 생각했던 것 보다 괜찮아 흡족한 마음으로 회사로 돌아왔다.

 

 

나중에 봐요 신광아크릴~

 

 

 

자자!! 이제 노행복대리는 이것을 부착할 것인데 실리콘으로 쏴서 작업을 하면 나중에 원상복구도 용이할 거라 생각해 바로 실행에 옮겼다.

 

 

 

우선 실리콘이 마를때까지 버텨줄 양면테잎을 부착 했다.

 

 양면 테잎은 역시 3M!!

 

 

그리고 실리콘을 촥촥촥촥!!!

 실리콘을 쏜 모습

 

 

그리고 턱!! 하니 소변기 옆에 붙이면 된다.

양생중이니 건들면 안돼요 ㅠㅠ

 

 

 

2개의 칸막이를 전부 부착했습니다.

 

다음날 출근해 보니 한개의 칸막이가 떨어지는 대 재앙이 일어나서 다시 작업을 했어야 했지만 다 완성된 모습을 보니까 저도 뿌듯했습니다.

 

그럼 완성된 모습을 볼까요?

 

 

 

빠바바바밤~ 빠바바바바밤~~~

 

 

변기 칸막이 부착을 완성한 모습

 

 

 

아크릴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더 괜찮았습니다.

 

비용도 12만원 밖에 들지 않았으니까요. 하하하!!!

 

이렇게 하나씩 개선해 나가는 과정 중에 무엇보다 우리 손으로 직접 한다는 것에 큰 애착을 느끼고 있습니다.

 

소변기 칸막이를 직접 이용해(?)보니 만족도가 참 좋았습니다.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어떻게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네)

 

 

하나하나 바뀌어 가고 있는 판도라티비 사무실이고 바뀔때 마다 직원들의 만족도도 올라가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하는 작은 행동에 직원들의 만족이 느껴진다면 노행복대리 한몸 불사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더 좋은 것을 들고 올게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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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람이 전부다

우리 판도라티비 회사는

 

남들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종무식을 했습니다.

 

종무식은 2015년 12월 23일날 진행 되었고 28일 월요일 부터는 크리스마스 휴가를 쓰게 되었죠.

 

크리스마스 휴가는 우리 복지패키지의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주일간의 휴가를 통해 해외여행을 갈 수도 있고 고향이 타지인 분들은 고향에 가서 힐링 할 수 있죠.

 

그리고, 휴가때 넉넉히 쓰라고 100만원의 휴가비도 같이 지급해 줍니다.

 

열심히 일한 만큼 힐링하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판도라티비 입니다.

 

 

그럼 판도라티비의 종무식을 보도록 할까요?

 

 

 

종무식이 열리기 전임을 알리는 Coming Soon!! 

 

 

드루와 드루와 다 드루와!!

 

 

 

 

시작은 각 그룹별로 사업계획과 신인사제도, 대표님의 경영철학을 공유하는 자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각 그룹별로 진행한 발표 세션

 

 

 

 판도라티비 그룹, 프리즘그룹, KMP그룹, 플럽그룹으로 나누어 자료를 공유하고 이후 부터 본격적으로 종무식을 시작했습니다.

 

이번 종무식은 외부에서 즐기기 보다 사무실 내부에서 다 같이 모여 즐기며 서슴없이 대화하며 소통을 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술이 빠질 수 없겠죠.

 

 시원한 맥주 대령이오!!!

 

소주도 빠질 수 없죠!

 

문제의 막걸리(알콜지수가 삼십도즘 되는듯 했다. 아니 더 넘었던것 같다.)

저도 막걸리 원샷 하고 회복하는데 시간좀 걸렸습니다.

 

 

 

막걸리 사진을 보시면 아주 맑은 것이 눈에 띌 것입니다.

(대표님께서 직접 막걸리 양조장에서 맑은 부분만 떠왔다는 후문이....)

 

다음은 안주가 빠질 수 없겠죠?

 

 이승무 그룹장님이 직접 공수한 문어(정말 맛있었음)

 

역시 이승무그룹장님이 현지에서 직접 공수한 과메기(인기가 의외로 많았던)

 

수육!!!

 

오뎅탕!!!

 

 까나페까지!!!

 

 

 

이제 종무식을 시작해볼까요?

 

 

사무실 가운데 큰테이블을 비치해 뷔페식으로 퍼가게 했습니다.

 

 

시작은 문제의 막걸리 부터

 

한해를 마무리 하며 술잔을 기울이는 CTO님(좌), CEO님(우) 

 

 

 

그래 너도 수고했다 술

 

 

 

 

 

 조촐해서 더욱 가족같은 KMP그룹

 

 

 

 

판도라티비의 중심인 판도라티비그룹

 

 

판도라티비 매출은 우리가 이끈다 프리즘그룹

 

 

 

 

 

우리가 차세대 성장동력이다 플럽그룹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축하의 케잌에 촛불을 붙여 끄기도 했고요.

(내가 막내다 길봉주프로)

 

 

다들 훈훈한 분위기에 술잔을 기울이며 많은 대화들을 했습니다.

 

 

 

 

 

 

 

 

 

 

 

 

 

 

자유롭게 술잔을 들고 이방 저방(이 그룹 저 그룹) 돌아다니며 한잔씩 기울이는 모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지금부터 어마무시한 막걸리의 공습이 시작됩니다.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표정으로 무시무시한 막걸리를 받는 박정미 프로

 

 

하나 둘 막걸리의 공습을 당하다.

 

 

이게 보통술이 아니네 자네도 한번 자셔보게

 

 

저만 죽을 순 없죠. 같이 드시죠.

 

 

 

술의 위력 덕분에 술잔을 들고 사무실을 배회하는 분들도 나타나고요.

 

 

갑자기 술상을 만드시는 분도 나타납니다.

 

 

술냄새를 맡고 삼삼오오 모이기도 하고요.

 

 

 

카메라를 들이대면 헤벌쭉 하기도 합니다.

 

 

 기분이 너무 좋아 하이파이브를 해달라는 분도 나타나죠.

 

 

 

 

네네~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같이 하이파이브!!

 

 

 

적극적으로 하이파이브를 원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하이파이브 안하면 때릴기세)

 

 

 

 

막걸리의 위력은 가히 파격적이라 몇 잔을 마시지도 않고도 소주를 남기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참 즐거웠던 자리였는데 사진을 많이 못찍어 표현할 방법이 없는게 아쉽네요.

 

 

 

 

 

 

전 직원 다 같이 모여 한해를 마무리 하는 자리를 갖게 되었는데 처음 마련한 내부행사다 보니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쁘게 즐겨주시고 자리를 더욱 빛내주신 직원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다음 번에는 좀더 안정적인 운영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더 즐겁게 놀 수 있는 파티를 만들어보도록 할게요.

 

 

 

 

마지막으로 따따따봉!!! with LB인베스트먼트 박제현상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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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람이 전부다

안녕하세요.

 

판도라티비 행복팀 노현승 입니다.

 

 

 

 

매일같이 행복팀은 대표님과 직원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을 하는데요.

 

이번 일은 행복팀의 정윤아프로님의 말로 시작된 프로젝트 입니다.

 

 

 

 

정윤아 프로  " 여자들은 화장실에 갈때 파우치를 들고가는데 이게 좀.. 불편해요. "

 

 

 

남자인 저로서는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사내 여자 화장실을 호텔처럼 바꿔보자!!!!!

 

 

기존의 것을 새롭게 바꾸려면 기존의 것을 알아야 겠죠?

 

네!! 그래서 제가 여자 화장실을 들어가 보았습니다.

 

 

부끄 부끄

 

 

 

 

이 곳이 판도라티비 여자 화장실 입니다!!!

 

판도라티비 여자화장실

 

 

 

저기 벽에 걸려 있는 수납장 같은 것이 보이시나요?

 

 

바로 이곳에 여직원 분들이 개인의 짐을 두고 다녔던 것이죠.

여 직원 수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한 공간입니다.

 

과거의 여직원 수납장

 

계속된 미팅과 여직원의 피드백을 통해 개선해야 할 점을 도출해 봤습니다.

 

1. 향기 가득한 디퓨져가 있음 좋겠다.

2. 비오는 날 여자의 머리를 지켜줄 용품(드라이어, 고데기 등)이 필요하다.

3. 개인 수납장이 있으면 좋겠다.

4. 거울이 부족하다.

 

 

접수를 했으니 실행으로 옮겨야지요.

 

 

우선 간단한 디퓨져 부터 놓았습니다.

 

 

 

1. 향기 가득한 디퓨져가 있음 좋겠다.

여자 화장실의 향기를 책임져 줄 디퓨져

 

완성입니다.

 

 

2. 비오는 날 여자의 머리를 지켜줄 용품(드라이어, 고데기 등)이 필요하다.

 

 

고데기와 드라이어기 사용하지 않을 시 닫을 수 있다.

 

 

 감성 묻어나는 손 편지도 함께 부착을 했습니다!!!

여 직원들을 위한 특별 손편지!!

 

 

 

3. 개인 수납장이 있으면 좋겠다.

 

아~ 이게 정말 어려웠습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누려야 했는데요.

 

그래서 일을 크게 벌려 봤습니다.

 

 

 

판도라티비를 표현하는 빨간 서랍장

 

 

 

이 서랍장이 총 5개가 필요했고 하나를 제작하는데 약 40~50분의 시간이 소요 됐습니다.

 

 

  

행복팀 직원이 서랍장을 만드는 모습

 

은근히 손이 많이 갔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철제 서랍장이기에 여직원의 물건을 소중히 보관하기 위한 내부 시트도 제작을 했죠.

 

 

 

 

 

행복팀의 부직포 자르기

 

 

그래서 완성된 서랍장을 보시겠습니다.

 

내부 까지 신경쓴 디테일한 모습

 

 

 

드디어 서랍장이 완성되었고 완성된 모습을 보니 행복팀으로서 정말 뿌듯했습니다.

 

여직원들이 사용할 서랍장(번호를 부여해서 누가 어떤 서랍을 사용하지는지 모르도록 했다.)

 

 

4. 거울이 부족하다.

 

서랍장 상단에 거울이 들어가면 이쁘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인터넷에서 저렴한 거울을 사서 부착하려 했죠.

 

약 4만원이 안되는 가격에 거울을 주문했고 드디어 도착을 했습니다.

 

근데 이게 또... 쉽지 않더군요.

 

거울 뒷부분에 뭐가 이리 많이 붙어 있던지.. 이 것들을 제거해야 부착 할 수 있어서 제거 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제는 자연스러운 노행복씨의 모습

 

 

뒤에 모진 것들을 다 정리 하고 실리콘을 쏴서 벽에 부착 했습니다.

 

그리고 서랍장 위에는 미용티슈, 꽃 등을 두어 한껏 이쁘게 꾸몄어요.

 

그럼 완성 된 모습을 보실까요??

 

 

전신거울도 두어 여직원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도록 했습니다. 

 

 

 

 빨간 서랍장과 잘 어울리는 포인세티아

 

 

 

그럼 Before & After 사진을 감상하실까요??

 

 

마법 처럼 달라진 여자화장실

 

 

마지막으로 기존에 붙어있던 수납장은 깔끔히 제거 했습니다.

 

 

 

이젠 작업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노행복씨

 

 

 

후기

 

 솔직히 생각 보다 오래 걸리고 잔 손이 많이 가는 일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씩 바뀔 때 마다 직원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굉장히 힘이 됐죠.

다 완성 하고 나서는 직원들이 맘에 들어해서 보람찼고 기뻤습니다.

 

 처음엔 가벼운 아이디어에서 시작하게 되었는데 하면 할 수록 직원들이 좋아하는 모습이 떠올라 더 욕심이 나서 적극적으로 하게 됐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팀 스스로 움직이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많은 것을 느낀 시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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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람이 전부다

 

 

쎈놈이 왔다!!

 

엄청나게 쎈놈이 왔다!!!

 

인터뷰를 하며 이렇게 다양한 경험한 사람을 만나본적이 없었다.

 

만나보러 가자!!

 

 

 

이런 사진을 잘도 찍는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펌프팀으로 입사한 윤정우다.

 

 

 

 

맡은 업무는 무엇인가?

촬영에 따르는 전반적인 업무를 한다. 기획도 하고 영업도 하고.

 

 

 

 

초등학생 윤정우는 어땠나?

맨 처음 예산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집으로라는 영화 아나? 정말 그와 같이 살았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2학년때 대전으로 나오게 되면서 부모님과 같이 살았다. 그러다 중학생때 미국으로 떠나게 됐다.

 

 

 

 

미국? 미국엔 뭐하러 갔나?

어머니께서 공부하라고 미국 디트로이트로 보냈다. 어머니 친구집에서 살았는데 그 분이 공항에서 일하셨다. 공항옆에 폐차장이 있었는데 그곳에 가서 타이어, 차 꼭대기까지 올라가고 아저씨 무릎에 앉아 프레스기도 눌러보고 놀면서 어머니 친구분을 기다리곤 했다. 그리고 흑인 친구들하고 어울리기도 했다.

 

 

 

 

이런 곳에서 놀았군

 

 

 

 

흑인친구들하고 어울리기 어렵지 않나?

처음엔 어렵지만 한번 친해지면 굉장히 잘해준다. 한살 많은 흑인 친구랑 친해졌다가 그 친구 친구들과도 같이 어울렸는데 다른친구들이 나에게 해코지 하면 같이 맞대응 해주고 좋았다. 오히려 백인보다 좋더라. 여담으로 브루스 윌리스를 좋아했던 그 흑인 친구는 변호사가 됐더라.

 

 

 

 

흑형들과 놀면 좋긴 한가 보다.

 

 

 

 

디트로이트에선 얼마나 있었나?

4개월 정도 머물다가 어머니께서 뉴저지로 전학을 시켰다. 그래서 뉴저지 사립학교를 다니게 됐다.

 

 

 

 

사립학교? 디트로이트는 국립학교였나? 많이 다른가?

디트로이트는 국립학교 였는데 차이가 많이 난다. 국립학교는 엄청 지저분한 반면 사립학교는 깔끔하고 조성이 잘 되어 있다. 기숙사도 있고 제복도 입고 그 곳에서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이 된다.

 

 

 

 

사립학교를 가는 이유라도 있나?

일종의 엘리트코스 같은 것 같다. 우리나라도 그런 문화가 있지만 미국은 더 심하다. 그렇게 처음부터 그런 코스를 밟으며 엘리트로 만들어지고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간다.

 

 

 

 

뉴저지에선 얼마나 있었나?

1년 6개월 정도 지내고 캐나다와 유럽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왔다.

 

 

 

 

 

캐나다... 유럽??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갔는데 그때 생존캠프를 경험했다.

 

 

 

 

 

생존캠프? 어떻게 참가하게 됐나?

어머니가 다 준비하고 참가신청까지 하셨다. 어머니께서 티켓 보내주고 캐나다로 가라고 해서 비행기타고 캐나다로 갔더니 어떤 아저씨 한분이 나와계시더라. 그분이 날 생존캠프로 데리고 갔다.

 

 

 

 

허허... 정말 신기하다. 생존 캠프에선 무엇을 했나?

한 달 반정도 코스였다. 온타리오주에 섬이 엄청 많은데 그중 한섬으로 이동을 했다. 그 섬에서 사는 거다. 총 30~40명이 참가를 하게 되고 한 그룹당 5~6명이 배정이 되어 통나무집에서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다. 메인 섬이 있고 다른 섬으로 이동을 해야 하는데 이동 하기 위해선 카누잉 자격증을 따야 하는데 그 안에서 카누잉 자격증을 따고 카누를 타고 다른 섬으로 모험을 떠나고 불 피우기도 하고 그랬다. 처음엔 너무 귀찮았는데 하다보니 재밌더라.

 

 

 

 이런 섬에서 생존캠프를!!

 

 

 

 

먹을거는 스스로 채집하나?

기본식량은 나왔다. 나이 별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나뉘었는데 우린 어려서 물고기잡는 것은 하지 않았다.

 

 

 

 

동양인은 혼자였나?

우리 그룹에서 동양인은 나 혼자였고 캐나다 4명, 유럽 1명, 사우디아라비아 친구가 한명이였는데 앜흐넷 이라는 발음도 어려운 친구가 기억난다.

 

 

 

 

 

정말 좋은 경험이였겠다.

그렇게 생각한다. 밤에 반딧불 수만마리가 날아드는 광경이 아직도 머리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생존캠프를 끝내고 어디로 이동했나?

공항에서 만난 그 아저씨를 따라 벤쿠버로 돌아갔다. 어머니가 섭외해주신 분인걸로 안다. 그렇게 캐나다에서 2개월간 살다가 유럽으로 이동했다.

 

 

 

 

확실히 정상은 아닌 듯 하다.

 

 

 

 

유럽은 또 왜갔나?

그냥... 어머니께서 가보라고 해서 갔다.

 

 

 

 

 

유럽에서 숙식은 어떻게 해결했나?

그때도 날 케어해주시는 분이 있었다. 그 분 집에서 살았다. 그 당시 어머니께서 계속 푸쉬해서 많이 지쳐있었다. 그래서 많이 돌아다니지 않고 집에만 있었는데 많이 즐기지 못해 아쉽다.

 

 

 

 

 

유럽에 있다가 한국에 돌아왔나?

그때가 16살? 즘이였는데 한국으로 돌아와 중학교 3학년으로 입학했다. 그리고 바로 여름방학이 되서 일본 오사카에 2주 정도 있다가 중국 상하이에 2주 정도 생활 하고 다시 한국으로 와서 고등학교에 진학 했다.

 

 

 

 

 

 

어린나이에 세계일주를 한듯 하다. 고등학교는 왜 한국에서 다녔나? 미국으로 가도 됐을텐데?

어머니께서 내가 공부를 너무 안한다고 한국으로 다니게 됐다.

 

 

 

 

 

학교를 보니 공부를 안한게 아닌데?

운이 좋아 수능을 잘봤다. 수능 3개 틀렸다.

 

 

 

 

 

공부를 안했다면서?

고3때 공부를 바짝했다.

 

 

 

 

어떻게 바짝했는데 수능을 3개 틀리나?

정말 무식하게 나만의 공부방법으로 했다. 하루에 문제집 1권 반씩 풀어댔다. 그렇게 1년동안 문제집 한 400권 정도를 풀었다. 그리고 수능을 봤는데 유형이 보이더라. 문제유형은 같고 숫자만 달랐다. 수능영어는 미국에서 살다와서 그런지 쉽게만 느껴져 공부를 할 필요가 없었다. 나중에는 문제집을 사도 똑같은 문제만 계속 나오더라.

 

 

 

 

단시간에 그렇게 점수를 올려 주변에서 놀랐겠다.

어머니도 놀라셨고 학교에서도 유명했다. 나중에 담임선생님께서 불러 점수올리는 법을 강의하라고 해서 강의도 했다. (웃음)

 

 

 

 

하루에 문제집을 그렇게 풀 수 있는 시간이 있나?

수업시간에 수업을 안듣고 문제집만 풀었다. 그리고 저녁먹고 쉴때 뒤에 대학교가 있었는데 거기가서 누나들 보고 농구하고 야자때는 무협지만 읽었다.

 

 

 

 

뉘예~ 뉘예~

 

 

 

수능 3개 틀렸으면 전교 1등 아닌가?

우리반 1등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항상 1등이였다.

 

 

 

 

그 친구는 수능을 몇개 틀렸길래?

그 친구는 만점 받았다 하하. 나중에 들은 얘긴데 내 점수가 마월 10~20점씩 오르니까 날 의식했다고 하더라. 난 날 신경조차 안쓰는줄 알았는데(웃음)

 

 

 

 

그 점수면 서울대도 갈 수 있는거 아닌가?

서울대 경제학과를 썼었고 논술면접을 보러오라고 해서 갔다가 완전 창피만 당하고 나왔다.

 

 

 

 

어땠길래?

교수님 한분이 우리나라 경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는데... 지금 생각해도 화끈 거린다. 피자에 비유를 하면서 피자의 크기가 너무 작다 피자의 크기를 키워야 분배의 양이 커진다 라는 식으로 설명을 했다.(웃음)

 

 

 

 

고 3학생에서 너무 어려운거 아닌가?

나 빼고 다 엄청 잘 대답하더라.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서 뭐 했나?

1학년 때는 열심히해서 학점이 좋은 편이였다. 2학년때 부터 춤추고 클럽다니고 방송국 따라다녀 성적이 안좋았다. 그땐 성적보다 즐거운 것만 쫓아 다녔다. 춤추는 동아리 들어가서 춤도 추고 KBS방송국 오프닝 공연 백댄서도 가고 영상하는 선배 따라다니면서 영상도 배우고 그렇게 지내다가 군대갔다가 전역 후 복학 하고 한 학기 있다가 미국으로 갔다.

 

 

 

 

 

미국엔 또 왜 갔나?

콜롬비아대학교로 1년동안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당시 영어는 어느정도 한다고 생각해서 어학연수 수업은 잘 듣질 않고 콜롬비아대에서 강의해주는 영어영문학 같은걸 들었는데 재밌었다. 그리고 외국 친구들과 많이 어울렸는데 그때 영어도 많이 늘었다.

 

노는데 돈이 부족해서 기숙사 비용을 환불 받고(부모님껜 아직도 미안하다) 친구들과 같이 살며 남는 돈으로 엄청 재밌게 놀았다.

비행기 타고 라스베가스로 갔다가 자동차 렌트해서 그랜드캐년도 갔다오고 그랬는데 정말 좋은 기억만 있다.

 

미국 마지막날 친구들과 옥상에서 파티를 했는데 많이 울었다(웃음)

 

콜롬비아대학교가 뉴욕에 있는데 뉴욕이란 도시는 정말 아름답다. 돈만 있다면 정말 재밌게 놀 수 있는 도시다.

 

 

 

 

어렵게 구한 사진이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왔나?

그렇게 1년을 보내고 한국에 와서 춤 동아리 크루활동도 하고 영화판 기웃거리고 놀다가 취업시즌이 닥쳐 왔다.

 

 

 

 

 

취업준비는 어떻게 했나?

그냥 남들 하는대로 하다가 A백화점에서 2개월간 인턴생활을 했고 인턴기간이 만료되고 나서 다시 B백화점으로 취직했다.

 

 

 

 

백화점으로 취직한 이유라도 있나?

다양한 회사에 냈는데 이상하게 백화점에서만 합격이 되더라.

 

 

 

 

백화점에서 어떤일을 했나?

그냥.. 슈퍼 을을을 이였다. 한개 층을 관리했는데 상사는 이렇게 하라고 지시를 하고 매장 직원들에게 요구를 해도 우리 보다 나이가 많이 다들 자기 멋대로 하고 상사에게 치이고 매장직원들에게 치이고 고객에게 치이는 슈퍼 을을을 이였다.

 

 

 

 

백화점을 퇴사한 이유라도 있나?

음.. 처음엔 본사에서 5개월간 실습을 했고 우리 동기들을 발령을 냈다. 그런데 나를 청주로 보내더라. 그래서 그만뒀다.

 

 

 

 

내 코에 부처있다.

이정도면... 퇴사사유를 다시 한번 살펴봐야 겠다.

 

 

 

 

... 대단하다. 그리고 다시 취업준비를 했나?

다시 취업해야 하는데.. 늦기전에 해야 하는데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막상 생각해보니 딱히 그래야 하나? 대기업에 들어가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만의 방송을 만들어 보여주고 싶은 생각에 같이 할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방송을 만들고 싶게된 계기는 무엇인가?

트위치TV(우리나라 아프리카TV와 비슷함)에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롤 방송과 고전게임 방송을 했는데 4~5천명이 시청을 했다. 여기서 가능성을 봤다. 이런식으로 고전게임의 향수를 젖은사람을 상대로 고 퀄리티의 영상을 제공하는 1인미디어라면 성공할 듯 싶었다.

 

 

 

 

 

어려움은 없었나?

영상촬영이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든다. 카메라 장비도 빌려야 하고 장소섭외에 따른 비용도 내야 하고. 카메라 장비가 만만치 않다. 처음에 1,500만원을 투자 받아 영상을 촬영했고 국가청년사업을 신청해서 계속 찍어 갔지만 인건비는 안나간다 해도 계속 지출되는 여러가지 비용으로 유지하기 어려웠다.

 

 

 

 

결국 판도라티비에 입사했고 영상촬영은 계속할 수 있게 됐다.

당시 판도라티비에 컨텐츠를 제공 하고 있었는데 서로 잘 맞았던 것 같다. 우리는 지속해서 완성도 높은 영상을 제공했고 물론 재미는 떨어질 지도 모른다. 단순히 웃기는 영상을 찍을 수도 있지만 우린 완성도 높은 영상을 원했다. 판도라티비도 그런 영상을 원했고 결국 판도라티비에 입사하게 됐다.

 

 

 

이 정도 포즈는 우습다.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된다.

나도 정말 기대된다. 다양한 장비를 갖고 좋은영상을 만들 수 있는 기대감이 크다. 2주 정도 일해봤는데 일이 정말 재밌다. 힘든거랑 상관 없이 재밌다. 내가 어떻게 만들까 고민하는 것도 좋고, 아직은 회사 내에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설득해서 얻어내는 과정도 즐겁다. 오늘도 여의도로 출근해서 처음보는 장비를 만져보고 전문장비를 테스트 해보고 판도라광고영상도 만들어서 올려 사람들의 반응도 보고 얼마나 재밌냐.

 

판도라티비 홍보 영상인 귀신 영상 봤나? 우리가 갖고 있는 자원에 비해 잘 찍었다고 생각한다.

 

2차 영상도 준비중 인데 이것도 기대된다. 방송국은 한 가지 촬영 하는데 스탭 100명이 달라 붙는다. 우리는 펌프팀 8명에서 하고 있다. 10배로 일해야 한다고 생각 한다.

 

그리고 컨텐츠가 다양해져야 한다고 생각 한다. 프로덕션만 50군데에서 다양하고 고 퀄리티의 영상을 제공해 주어 서드파티가 활성화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크게 성장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탄생한 판도라티비 2차 홍보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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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람이 전부다

유쾌한 그녀가 왔다!!

 

영상 촬영부터 인터뷰 내내 밝은 톤으로 쾌활하게 웃는 그녀였다.

 

사진촬영 또한 유쾌했던 그녀!!

 

고향이 충청도로 구수한 매력보단 활발한 매력을 갖고 있는 그녀.

 

누구인지 샅샅이 파헤쳐보자!!!

 

 

사진만 봐도 유쾌하지 않나?

 

 

 

말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공손히 해야 하나?

편하게 말하면 된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프리즘팀에 입사한 이혜진이다. 잘 부탁 드린다.

 

(카메라촬영하는 분을 바라보며)이쁘게 나오나? 남들 찍은 것좀 보고올걸 그랬다. 어떻게 하는지 공부 좀 하고 올걸..

오.. 되게 떨린다. 연예인 된 듯한 느낌이다.

 

 

 

맡은 업무는 무엇인가?

프리즘팀에서 제휴 매체사들 영업관리 하는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아.. 이거 너무 어렵다. 먼저 질문지를 줘야 하는거 아닌가?

 

자연스러운걸 담아야 하고 어려운 질문이 아니니까 그냥 진행한다.

세상에~ 너무 어렵다.

 

 

 

 

광고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

고등학생때 특별히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그러다 광고가 시대를 대표하는 거울이라는걸 알게 됐다. 그 시대의 트렌드는 광고를 통해서 알게 된다. 그리고 15초안에 사람을 매료 시킨다는 것도 맘에 들어 시작하게 됐다. 됐나? 아~ 정말 못하겠다.

 

 

 

(그러면서 하고 싶은 말은 다한다.)취미는 어떻게 되나?

드라마 보는거 좋아한다. 감명깊게 봤던 드라마를 1편 부터 끝까지 몰아서 본다. 특히, 퓨전사극인 "다모"를 제일 좋아한다. "다모"는 저장해 두고 굉장히 주기적으로 보고있다. 또, 어울리진 않겠지만 출퇴근시간 이용해서 책 읽는거도 좋아한다. 최근엔 생일에 친구들에게 자전거를 선물 받아 주말에 시간내서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야구보는것도 좋아한다!

 

 

 

이상형은 어떻게 되나?

일단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즐길 줄 아는 사람. 책임감 있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나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나를 웃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다. 

 

나 잘하고 있나?

 

 

 

인터뷰한 사람중에 가장 밝다.(말이 제일 많다.) 학창시절때 얘기를 좀 해보자.

고향이 충청북도 영동이다. 고등학생때 남녀 합반이였는데 전체 5개반 밖에 되지 않았다. 모두들 친했고 친구들과 어울리는걸 좋아했다.

 

 

 

 

 

 

 

 

대학생활은 어땠나?

1~2학년엔 노느라 바빠서 광고가 재밌다는 느낌은 없었다. 자취생활을 했는데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게 힘들었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니까 너무 재밌었다. 광고홍보학과 특성상 3학년이 되면 제작물을 쏟아내야 한다. 3학년생들이 기획서, 광고크레에이티브작업들, 광고제, 전시회를 주축이 되어 진행을 하는데 이때 전공에 흥미를 느꼈다. 팀장경험도 하고 매일매일 철야작업에 과제하고 조별모임하고.. 3학년은 정말 빨리 지나갔고 잘 보냈다고 생각 한다.

 

 

 

어떤 작품들을 준비했나?

수업시간 과제 자체가 PPT를 만들어야 했다. 요새 광고 트렌드 매체 이론부터 시작해서 떠오르는 미디어는 어디인지. 심지어 교양수업도 전부 PPT작업을 해야 했다. 기억에 남는 것은 광고제 전시회를 진행 했을때 인데 당시에 조장으로 차별 없는 차이라는 주제를 갖고 PPT산출물 UCC를 만들고 상도 받았다.

 

 

 

어떤 UCC를 만들었나?

빨간색을 주제로 해서 빨간색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일요일은 누구에게나 쉬는날 헌혈은 누구에게나 기쁜일 이렇게 빨간색이 주는 공통점으로 만들었다. UCC는 이태원에 가서 외국인들을 섭외해 한 소절씩 한국어로 손에 손잡고를 부르게 해서 만들었다.

 

 

 

대학생활을 하고 바로 인턴으로 취직을 했다?

4학년때 1학기만 이수하고 2학기때 부터는 교수님의 추천으로 인턴을 시작했다.

 

 

 

인턴을 시작하면서 서울로 오게 됐나?

23살에 서울에 와 친구와 같이 살았다. 홍보대행사에서 3개월간 인턴 생활을 했다. 3개월간의 인턴 생활이 끝나고 에이젼시 온라인 광고대행사에 일을 했다. 그곳에선 웹기획 업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1년 5개월간 하면서 웹기획 업무보단 다시 광고가 하고 싶었던 열망이 강해 정리를 하게 됐다.

 

 

 

최근 다윈사업이 성과가 잘 나왔다고 들었다.

그래서 많이 뿌듯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으니 기억에 많이 남는다. 다윈이름을 지을때 재밌었다. 낱말카드를 각자 열개씩 내서 회의실 벽에 다 붙여서 투표했는데 그런 과정이 재밌었다. 또 다윈 런칭일이 4월22일 이였는데 내 생일이랑 같아서 의미가 깊다.

 

 

 

판도라TV로 이직하게된 이유는 무엇인가?

전 직장에서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는데 그걸 해소할 수 있을거라 생각 했다.

 

 

 

아쉬웠던 부분은 무엇인가?

당시 동일한 상품으로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가 굉장한 숙제였고, 더 이상 매체를 확장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 했다. 그러기 위해선 고도화된 상품, 투자 그에 따른 기술력이 필요한데 그게 부족하다 보니 아쉬웠다. 내 욕심만 채운자고 되는 것도 아니고.. 물론 내가 알지 못하는 부분이다 보니 그 회사에서는 그 부분에대한 계획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판도라티비에서 하려는 프리즘사업은 소셜로 채널을 확장하고 광고상품도 네이티브, 비디오, 소셜로 확장하는 부분들이 매력적이라 생각해서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입사하고 판도라티비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

생각보다 조용해서 깜짝 놀랐다. 전체적으로 뭔가 영한 분위기일줄 알았는데.. 물론 영하지 않다는건 아닌데.. 내가 아직 어색해서 그런걸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뭔가 되게 조용한 것 같다. 전 직장에서는 사적으로 대화를 나누거나 교감하고 간식사러 나가기도 하고 점심먹고 같이 산책도하고 그랬는데 여긴 간식도 사내에 있고 구내식당이 있어 그런 것같기도 하다. 우선 내가 먼저 팀원들하고 친해지고 직원들과 친해져야 겠다.

 

 

 

메모를 많이 한다고 들었다.

음.. 다이어리에 적는건 아니고.. 그렇다고 일기를 쓰지도 않는데 짧게 짧게 메모하는걸 좋아한다. 책보다가 좋은 글귀 있으면 포스트잇에 적어두곤 한다. 그런데 요즘은 캡춰나 사진촬영 기능이 좋아서 그걸 많이 활용 한다. 좋은글, 예쁜 한글말 웃긴글 좋아한다.

 

 

 

 

 

 

 

 

 

 

 

가치관이 "세상의 영웅이 될 수 없다면 영웅에게 없어서는 안될 단 한 사람이 되자." 무슨 뜻인가?

대체할 수 없는 인력이 되고 싶다. 내가 아니면 절대 안되는 일을 했으면 한다.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거나 부자가 되고 싶다기 보다 어떤 분야에서 내가 아니면 불가능한 업무를 해보고 싶다.

 

 

 

광고일을 하는데 필요한 덕목은 뭐라고 생각 하나?

변화에 빨리 대응할 수 있는 순발력이 필요하다. 변화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변화하는것에 무서워하지 않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 맞춰 준비해야 한다. 이 부분은 나도 아직 부족하다. 시장은 이미 너무 많이 변했는데 후배, 동기, 선배들 중에 변화한 시장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있더라.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

신규사업을 전체적으로 큰 그림을 그리고 설계하고 이끌어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야구도 좋아한다고 들었다.

서울오면서 야구를 좋아하게 됐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보는거 좋아한다. 친구따라 야구장에 가서 보게 됐는데 재밌더라. 처음엔 여러구단을 좋아하다가 고향이 충북이라 한화팬이 되었다. 특히 요새 한화경기가 너무너무 재밌다. 끝날때까지 끝나지 않는 그런경기를 한다. 그래서 팬할맛이 난다.

 

 

 

유니폼도 있나?

유니폼 구입 당시 이태양선수와 최진행선수를 골라야 했는데 이태양선수로 하면 너무 얼굴만 보고 야구좋아하는 여자 같아서 최진행선수로 유니폼을 구입했다.(웃음)

 

 

 

 

 

 

 

 

야구장엔 자주 가나? 

 

 

 

작년엔 한달에 한번씩은 갔다. 잠실도 가보고, 대전도 가보고, 부산도 가봤는데 부산은 롯데팬이 아니면 응원하기 좀 무섭더라.

 

 

 

친구들이 자전거를 선물해 줬다고?

큰 자전거는 아니고 작은 자전거를 친구들이 선물해 줬다. 숙지해야할 매너들도 많고 지켜야할 룰도 좀 있고 빠르게 달리질 않아서 멀리나가질 않고 주로 동네에서만 살살 탄다.

근데, 자전거 앞에 주머니를 도둑 맞았다. 서울사람들 무섭다. 벌건 대낮에 그걸 뗘가더라.

 

 

 

충청도 처자에게 서울사람의 무서움을 알게 해준 자전거. 눈뜨고 코베이기 쉽상이다.

 

 

 

여행은 다녀봤나?

전에 같이 일했던 대리님과 한달간 터키여행을 다녀왔다.

 

 

 

한달동안? 꽤 오래동안 머물렀다.

대행사에서 일하다 보니 철야도 많아 몸과 마음이 너무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아무생각 없이 쉬다가만 오자고 생각했고 휴양지에 머물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터키와 인도를 가서 휴양하기로 결정은 했는데 같이간 대리님이 인도를 다녀왔다고 해서 터키로 결정했다. 한달동안 도미토리에서 먹고자고 생활 했다.

 

 

 

그래서 힐링은 됐나?

지금 생각하면 좋은 기억이였는데 당시엔 너무 힘들었다. 같이 간 대리님이 좋은 여행습관을 전파해줬는데 매일 일기쓰기 였다. 노트를 챙겨가서 하루하루 매일 썼는데 지금 다시 보니 힘들다, 집에 가고 싶다는 얘기가 더러 적혀있더라.(웃음)

 

 

 

기억에 남는 일은 있나?

정말 우연히 현지인 결혼식을 봤다. 우리나라 결혼식은 경건한 반면 터키는 야외식당? 잔디밭? 같은 곳에서 신나게 춤추고 하는데 멋있더라. 그리고 우리만 외국인이였는데 아이들이 신기해하면서 먹을것을 갖다주고 사진찍는다고 다 모여서 같이 사진찍고 즐거웠다.

 

 

 

사진찍는 다고 모인 터키 어린이들

 

 

 

결혼식장에 모여 춤추는 터키인들(왼쪽분은 유독 흥이났나보다.)

 

 

 

그리고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열기구도 탔는데 다 타고 보니 안전장비를 하나도 안했더라. 어떻게 탔나 싶었다.

 

터키는 생각외로 안전한 곳이였다. 사람들도 되게 친절하고 한국말도 잘한다.

 

 

 

누구나 한번쯤은 타고 싶은 터키의 열기구

 

 

 

음식은 입에 맞았나?

터키 음식들이 주로 케밥, 닭고기, 돼지고기 였는데 같이간 대리님과 내가 애들입맛이라 잘 맞았다.

 

 

 

김치나 라면은 생각이 안났나?

신혼여행 오신 분들이 선물이라고 김치를 줘서 간간히 먹었고 한국사람들이 많이 오다보니 신라면을 비치해두는 업소가 있어 라면도 먹었다. 해외에서 먹는 라면이 너무 맛있어서 울뻔했다(웃음)

 

 

 

마지막 인사 부탁 한다.

앞으로 업무하면서 많은 도움 부탁드리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파 할 수 있는 그런 사원이 되겠다. 

 

 

 

 

 

 유쾌한 인터뷰 즐거웠습니다. 대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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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람이 전부다

 

훈훈한 훈남이 입사했다!!

 

알면 알 수록 속까지 훈훈한 이 남자!!

 

파헤쳐 보자!!!

 

 

 

 

 

훈내가 철철 난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IOS개발자인 26살 서울에 사는 변형준이다.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나?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 그리고 나다. 아버지께서는 강릉에서 이불매장을 운영하고 계셔서 서울에선 어머니, 누나와 같이 살고 있다.

 

 

 

왜 하필 강릉인가?

강릉에 숙박시설이 많아 그 곳에서 이불 매장을 하신다.

 

 

 

장사는 잘 되나?

잘 모르겠지만 잘될때도 있고, 잘 안될때도 있는 것 같다.

 

 

 

이번 여름휴가는 강릉으로 가나?

그럴것 같진 않다.(웃음)

 

 

 

 

 

개발자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

고등학교때 아는분이 웹페이지 개발하는 것을 봤다. 새로운 언어로 작업해서 동작하는 과정을 보니 신기하더라. 그것에 매력을 느껴 개발자가 되고 싶었고 관련학과고 진학 하게 되었다.

 

 

 

대학교에 가서는 무엇을 배웠나?

일반적 교육과정인 JAVA, ASP.net등을 배웠고 졸업작품으로는 웹페이지를 만들었다.

 

 

 

IOS개발을 택하게 된 계기라도 있나?

군대 전역 후 아이폰을 처음 쓰게 되었다. 심플하고 보안성이 뛰어나더라. 그러다 안드로이드를 써봤는데 불편해서 못쓰겠더라. MAC도 처음 적응 하기 어려워서 그렇지 적응하고 나면 사용자 입장에서는 참 편하다. 그리고 애플 제품 끼리 호환성도 좋다. 개발자로서 계속해서 나간다면 IOS로 나가는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판도라티비가 첫 직장인가?

두번째 직장이다. 첫번째 직장은 IT전문 기업이였는데, 파이프가 주력사업인 회사에서 IT에도 진출하기 위해 인수를 추진했다. 입사 한지 3~4개월이 지나니까 회사가 합병된다고 하더라.

 

 

 

전 회사를 퇴직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뭔가?

난 아직은 초급개발자다. 그러다 보니 나보다 선임자에게 많이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곳에선 IOS개발자가 나 혼자 밖에 없었다. 그리고 IT전문기업이 아니다 보니 나의 발전 속도가 많이 더뎠다. 그런 환경에 처해있다 보니 경력이 있으신 분들이 여긴 초급개발자가 다닐만한 회사는 아니니 다른 회사를 알아보라고 권유를 해줬다. 그래서 퇴사를 결정하게 됐다.

 

 

 

 

다행히 이곳은 사수가 있다. 사수(황찬혁과장)와는 대화 좀 나눠봤나?

입사 이틀째라 많이는 하지 못했다. 황찬혁과장님도 입사한지 오래 되지 않아 아직 적응중 이신것 같다.(웃음) 그래도 어제 입사하자 마자 IOS개발자들 끼리 티타임을 했다. 그때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게 되었고 덕분에 풋살동호회를 알게 되었고 가입도 했다.

 

 

 

 

입사하자마자 풋살동호회에 가입하고 다음날 바로 실전에 투입됐다.

 

 

 

 

판도라티비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

입사하기 전에는 회사이름만 알고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회사 블로그를 보게 됐는데 거의 모든 포스팅을 읽어봤다. 물론 블로그에 보이는 회사분위기가 전부는 아닐테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반영되지 않을까 한다. 블로그를 통해 알게된 건 직원들에 초점을 맞춘 회사. 젊은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환경에서 근무해보고 싶었다.

전 회사에서도 블로그가 있었지만 운영하시는 분이 연배가 있으셔서 판도라티비 블로그 처럼 활성화 되어 있지 않았다.

 

 

 

 

전 회사를 그만두고 쉬는동안엔 뭐했나?

2개월 동안 쉬었는데 제주도와 태국에 갔다왔다. 제주도는 친구와 태국에는 여자친구와 갔다왔다.

 

 

 

 

여행중 기억에 남는 일은?

제주도에 친구랑 둘이 놀러갔었는데 게스트하우스에서 묶게 됐다. 저녁에 파티에 참석하게 됐는데 남녀 다같이 모여서 할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죄다 남자였다. 그런데 왠만한 남녀가 모여 노는 것 보다 더 재밌게 놀았다.

 

 

 

 

 

그 인원들끼리 계속 연락은 하나?

단체 카톡방이 있긴 하다. 그런데 맨정신엔 다들 연락을 안하는 것 같다. 술 취해야 톡이 오더라. 그 왜 있지 않나? 술마시지 않은 상태에선 어색하지만 술마시면 어색하지 않은 사이.

 

 

 

(웃음)그런사이 알고 있다. 입사하자마자 풋살동호회 가입했다고 했는데 축구를 좋아하나 보다.

초등학교때 부터 좋아했다. 중,고등학교를 거쳐 체육대회때 많이 출전했고 군대에서도 축구를 했다.

 

 

 

 

군대에서 선임들이 많이 좋아했겠다.

운이 좋게 축구를 할줄 아는 동기들이 없었다. 나도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닌데 축구를 아예 해보지 않은 동기들과 만나게 되니 덕을 많이 보더라. 입대하고 선임이 축구할줄 아냐고 물어봐서 할줄 안다고만 대답했는데 중대에선 이미 축구 잘하는 아이로 소문 나있었다.

 

 

 

군대가 원래 그런곳이다. 그럼 포상휴가좀 받았겠다.

초반엔 주로 중대 체육대회를 나갔는데 타 중대 사람중에 선수출신이 있어서 받지를 못했다. 그러다 병장때 GOP에 들어가게 되면서 체육대회를 한적이 있는데 그땐 소대단위라서 포상휴가를 받아봤다.

 

 

 

선수출신은 다른가?

이등병때 고참들이 그 선수출신을 어떻게든 막으라고 해서 붙어본적이 있다. 와~ 막으려고 손이랑 발을 다 썼는데 막질 못했다. 우리는 축구화 신고하고 그 사람은 활동화를 신고 했는데 도저히 막을 수가 없더라. 프리미어리그에서 나올법한 중거리 슛을 때리니까 막을 방법이 없었다.

 

 

 

 

군대스리가 라고 들어는 봤나?

 

 

 

축구 말고 다른 취미는 있나?

야구경기 보는 것도 좋아한다.

 

 

 

응원하는 팀은 어딘가?

LG트윈스 팬이다. 96년도에 아버지와 아버지후배랑 처음 야구장을 갔다. 아버지는 전라도 분이셔서 당시 해태를 응원했지만 아버지 후배분께서 서울남자는 LG팬이여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LG어린이 회원에 가입도 했다.

 

 

 

야구시청도 하나?

당연하다! 구직활동을 하는 초반에는 전 경기를 다 시청했다. 그런데 보다보니 암 걸릴것 같아서 요즘은 시청을 자제 하고 있다.

 

 

 

 

야구팬은 알고있는 DTD. DTD는 과학이다.

 

 

 

 

야구는 해봤나?

고등학교때 동아리에 들어서 해봤다. 당시엔 포지션이 정해진게 없이 어깨가 아프지 않으면 투수를 보기도 하고 내야수를 보기도 하고 계속 바뀌었다.

 

 

 

못해본 운동이 없구만. 다른 운동도 해봤나?

수영도 해봤다. 어렸을때 어린이 수영센터에 다니다가 잠시 그만두고 군대 전역후에 2년정도 했다. 요즘엔 등록만 하고 못가고 있다.

 

 

 

가족들이 스포츠를 좋아하나보다.

아버지께서 등산, 자전거, 수영 여러 운동을 좋아하신다. 그래서 어렸을때 아버지따라 산에 다녔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영향을 끼쳤나 보다. 누나도 이번에 복싱으로 다이어트해서 10Kg감량했다. 요새 누나가 다이어트 한다고 고구마만 먹더라(웃음)

 

 

 

이상형은 어떻게 되나?

웃는 모습이 아름다운 여자. 그리고 운동좋아하는 여자. 운동선수중에 김연아다.

 

 

 

 

그렇다. 웃는게 아름다운 연아느님이다.

 

 

 

 

여자친구 얘기좀 해보자.

6살 연상의 만난지 300일 되가는 여자친구가 있다.

 

 

 

어떻게 만났나?

테니스 하다가 만나게 됐다.

 

 

 

안해본 운동이 없구만.

(웃음)평소에 테니스를 치고 싶었는데 금액도 쎄고 테니스장이 없어 배우질 못하고 있다가 어렵게 등록을 하게 됐다. 테니스에서 그룹레슨을 하게 되면 4~5명이 한조가 되어 배우는데 신기하게 사람들이 없다보니 둘이서 배우게 됐다. 그러다 친해지게 되고 연인사이로 발전하게 됐다.

 

 

 

태국여행은 여자친구와 갔다왔다고 했는데 별일 없었나? 

구박 많이 당했다. 난 즉흥적으로 가고싶은데가 있으면 가고, 먹고싶은게 있으면 먹는 스타일인데 여자친구는 계획적으로 짜놓고 움직이는걸 좋아하더라. 그런 계획을 짜놓지 않고 움직이다 보니 구박을 많이 당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얄미운건 여자친구의 친구 남자친구들이다. 그 사람들은 다 계획을 짜고 여행을 계획대로 움직였다고 한다. 참 부지런 하기도 하지.

 

 

 

 

많은 구박을 당해 늘어져있는 어깨(변무룩)

 

 

 

 

 

블로그에 포스팅 되면 여자친구가 볼텐데 상관 없나?

괜찮다. 없는 말을 한것도 아닌데.. 그리고 여자친구도 사원인터뷰한걸 보고 재밌다며 나는 언제하냐고 물어봤다.

 

 

 

이것으로 마치겠다. 마지막인사 부탁한다.

(한참동안 생각을 정리하더니) 1년 4개월의 실무경험이 있지만 아는 것 보다 배울것이 많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빨리 습득해서 판도라티비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좋은 사원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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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람이 전부다

 

 

그랬다. 참 오래 걸렸다.

 

IOS개발자를 찾고 채용하는데 까지 오래걸렸다.

 

그래서 더욱 궁금하다.

 

누군지 하나씩 파헤쳐 보도록 하자!!!

 

 

 

(핸드폰을 꺼내들어 녹음을 시작했다.)

녹음까지 하나?

당연하다. 정리해서 블로그에 포스팅 하려면 녹음해야 한다.

 

 

쉬운게 아니구나. 그나저나 인터뷰 같은건 머리털 나고 처음이다.

 

 

재밌는 시간이 될 거다. 자기 소개 부탁한다.

기획팀에 입사한 IOS개발자 황찬혁이다. 잘부탁 한다.

 

 

IOS개발하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나?

원래는 웹개발을 하다가 당시 모바일 붐이 일어나서 모바일 웹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었고 IOS앱 개발 파트가 있어 몸을 담게 되다 보니 네이티브앱 개발을 시작하게 됐다.

 

 

IOS개발 경력은 얼마나 되나?

4년 정도 한거 같다.

 

 

어렸을때부터 개발자가 꿈이였나?

고향인 강화도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그 학교에 컴퓨터실이 있었다. 5학년때 친구따라 C/A활동을 했는데 그때부터 컴퓨터에 빠졌다. 처음엔 게임부터 시작해서 프로그램을 차례대로 배우기 시작했고 그 시기부터 개발자에 대한 꿈을 꿨다.

 

 

당시 어떤 프로그램을 배웠나?

애플 8비트 컴퓨터 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중학교때 컴퓨터 학원을 다니게 됐다. 그 학원에서 포트란, 코볼, 베이직, 기계어 등 다양한 것을 배웠다. 책 보고 따라서 그대로 하면 결과값을 보는 식이였다. 당시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중학교 3학년때 부터 알게 되더라. 흥미를 갖고 하다보니 내가 곧 잘 따라 갔던것 같다.

 

 

 

이것이 8비트 애플 이다!!

 

 

 

초기에 만든 프로그램을 기억하나?

음... 학원에서 한달에 한번씩 시험을 봤다. 디지털 알람시계 만들기, 벽돌깨기 게임 만들기 같은 프로그래밍을 하는 거였다. 당시 코드를 통으로 외워서 하는 친구도 있었다. 당시 컴퓨터는 저장기능이 없었다. 프로그래밍을 하다가 중간에 컴퓨터가 꺼지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다.

 

 

그렇게 되면 코딩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겠다?

주말에 시험을 봤는데 아침부터 시작해서 점심먹고 와서 다시 짜고 하루종일 했다. 그래도 당시엔 너무 재밌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컴퓨터에 공부를 했다. 그러다 더 깊게 공부를 하려면 대학에 들어가서 배워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결국 고3때 망치긴 했지만 말이다.

 

 

 

고3때 망쳤다는건 무슨 얘긴가?

몸이 안좋았다. 기흉이였다.

 

 

기흉? 어떤 병인가?

허파가 터져서 안에 공기가 차게 되고 숨을 쉬기힘들어 진다.

 

 

숨을 쉬기 힘들다고? 엄청난 고통일 듯 하다. 언제 처음 발병했나?

아마 고등학교 2학년때 일것이다. 그게 원래 마른사람들이 잘걸린다. 심하게 운동하고 쉬고 있는데 가슴이 아파오기 시작했고 등도 따끔 거렸다. 병원에 가서 X-Ray를 찍었는데 허파가 터졌다고 하더라. 근데 처음엔 수술을 안시켜 주더라. 그게 두 세번 터져야 수술을 시켜 준다고 했다. 세번째 터졌을때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술을 했고 20살 때 또 터져서 재수술을 했다. 이제는 신촌 방향은 가고 싶지 않다.(웃음)

 

 

 

숨을 못쉴때 고통은 엄청 나겠다.

너무 힘들었다. 응급실에 갔을때 공기가 차 바람을 빼야 하는데 난 수술대 위에 누워있었고 의사가 연차수가 많지 않은 레지던트 들을 데리고 강의를 하더라. 바람을 빼려면 몇 번째 갈비뼈에 꽂아야 한다는 둥.. 한번은 내가 너무 아프다고 하니까 X-Ray를 다시 찍었는데 너무 깊게 박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마취가 풀린 상태에서 내 허파에 박혀 있는 튜브를 조금씩 빼서 위치를 맞추고...

 

 

 

속이 미식거린다. 더 이상 상세한 얘기는 하지말자. 군대는 갔나?

기흉때문에 군대 면제를 받았다. 신체검사를 받으러 갔었는데 X-Ray들고 가니까 그 자리에서 박수쳐주면서 면제입니다. 하더라. 주변 사람들은 저 사람은 뭔데 면제야? 하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장동건도 기흉으로 군대 면제 받은걸로 알고 있다.

 

 

 

IOS개발자 답게 각종 IOS기기들이 책상위에 놓여져 있다.

 

 

 

 

취미 중 하나가 게임이라고 들었다. 최고의 게임은 뭐라고 생각 하나?

뭐니뭐니 해도 울티마온라인이 내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97년 출시된 울티마온라인은 우리 인간사회의 모든 시스템들이 그 안에서 표현이 가능했다. 그 때문에 상당한 몰입도를 자랑한다. 나만의 케릭터를 다양한 스킬들을 올려서 그랜드 마스터를 만들고 던젼에 가기도 하고, 상대방 케릭터를 죽이기도 하고 훔치기도 하고 자유도가 높았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접속이 가능했기 때문에 유럽, 북미, 일본 사람들이 모였다. 그 안에서 길드전쟁도 일어나기도 하는데 특히, 일본애들과 할때는 피터지게 새벽까지 전쟁을 했다.

 

 

 

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었던 울티마 온라인 높은 자유도에 반해 진입장벽이 높았다.

 

 

그 이후에는 어떤 게임을 했나?

울티마 온라인이 2.5D게임였다. 이 게임을 그대로 옮겨 놓은 Dark Age of Camelot을 하게 됐다. 울티마 온라인의 모든 시스템들이 접목이 되었고 3D게임이라 매력적이였다. 이 게임을 하면서 커뮤니티, 일종의 팬페이지도 같이 운영했다. 이 커뮤니티에 많은 유저들을 유치했다.

 

 

 

직접 운영까지 했다고? 접속자 수는 얼마나 됐나?

보통 게임이 서버점검할때 유저들이 갈데가 없어 팬페이지로 몰렸는데 그때 동접자수 4~5천명이 몰렸다. 서버가 크지 않아 서버가 다운이 되기도 했다. 하루 평균 방문자는 3~4만명이 됐다.

 

 

 

광고를 넣었으면 돈좀 벌었겠다.

그러게 말이다. 당시엔 많은 사람들에게 이 게임을 알리기 위해 무료로 운영을 했다. 그리고 광고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진 못했다. 알았으면 했을텐데(웃음)

 

 

 

독특한 이력이 있다. 성인 스트리밍서비스를 했었다고?

성인 사이트는 순수하게 돈을 벌기 위해 운영을 했다. 당시 IMF여파로 인해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이 많지 않았다. 성인 컨텐츠사업이 돈을 좀 벌 수 있는 아이템이라 생각 했고 같이 하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국내에 만들어 운영을 하게 되면 법적인 문제가 생겨 실제로 외국에 거주하는 사람이 회사 설립을 했고 외국에 서버를 두고 한국에 스트리밍으로 컨텐츠를 제공하는 사업이였다.

 

 

 

주 고객층은 어떻게 됐나?

잘 알겠지만 성인 컨텐츠는 유료일 수 밖에 없지 않나?

 

 

 

아니 잘 모른다.

(웃음)돈을 소비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사람들과 성인 PC방 업체 였다.

 

 

 

성인PC방?

당시 성인PC방이 많이 생겼는데 그동안 그곳에선 파일을 저장해 두고 있었는데 스트리밍으로 지원해서 컨텐츠를 제공하는 방식이였다. 업주들에게 월 정산을 받아 입금 받는 식이였다. 2년 6개월 정도 같이 한듯 하다.

 

 

 

 

더 길게 얘기 하고 싶지만 다음으로 넘어가자. 축구 시청이 다른 취미라고 들었다.

축구 경기 보는 걸 너무 좋아한다. FC서울 팬으로 직접 관전 하는 것도 좋아한다. 뿐만 아니라 해외 축구도 시청을 한다. 해외 축구는 보통 새벽 3~4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주말에 축구를 보기 위해 미리 치맥을 준비하고 축구가 시작하면 TV와 여러 모니터를 통해 시청을 한다.

 

 

 

동시에 시청을 한다고?

프리미어리그, 분데스리그 등 4~5개를 동시에 봐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가장 좋아하는 경기를 메인 TV로 시청을 하고 나머지는 모니터로 시청을 한다. 주말에 그렇게 스트레스를 푼다.

 

 

 

주말엔 집에만 있겠다?

중요한 축구경기가 있을때면 약속을 잘 잡지 않는다.

 

예전 박지성이 나왔을때 박지성 경기는 한번도 빼놓지 않고 시청했다. 새벽 4시 경기에는 전날 일찍 잠을 청하고 기상해서 시청 했다. 여기서 중요한건 TV를 켜 놓고 자야한다. 그래야 게임시작 시간에 일어나서 시청을 하면서 잠을 깨니까 말이다. 그 밖에 이영표, 설기현 등 한국선수가 나오는 경기는 빼놓지 않고 시청을 했다. 당시엔 국내에서 중계해주는데가 없어서 무조건 해외 인터넷으로 시청을 했다. 외국에선 중계해주는 곳이 많더라.

 

 

 

박지성의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활동량이다.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경기를 보면 유일하게 박지성만 뛰어다닌다. 공을 끌고다가 뺏기면 다른선수들은 가만히 있는데 박지성은 끝까지 뺏으려고 뛴다. 악바리 근성이 보였고 그게 매력적이였다.

 

 

 

그럼 임팩트가 부족하지 않나?

그거만 있었으면 부족했겠지만 골 어시스트도 많이 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 맨유에서 박지성에 대한 평가가 좋은 것이다.

 

 

이영표와 박지성은 한때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했다.

 

 

 

 

최고의 사진이라 꼽히는 박지성과 이영표 컷

 

 

 

 

요샌 손흥민이 잘한다고 하는데 국가대표만 오면 못하는것 같다?

예민한 부분일 수도 있겠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전술 문제인듯 하다. 주변에서 받쳐주는 선수들이 어느정도 실력이 되면 더 잘해 보일 수 있겠지만 현재 우리나라 선수들이 외국 선수들에 비해 기량이 부족하다 보니 수비지향적일 수 밖에 없고 그 안에서 전술을 만들다 보니 공격적인 손흥민이 못해 보이는게 아닌가 싶다. 나중에 이승우 선수가 손흥민과 같이 하게 되면 공격쪽에서는 해외 상위권 팀과 견줄 수 있을 듯 하다. 그래서 이번 월드컵이 기대가 된다. 대신 이승우가 잘 커줘야지..

 

 

 

12월에 전 직장을 퇴사하고 5월에 우리회사에 입사 했으니 시간이 좀 됐다. 이유라도 있었나?

나에게 맞는 곳을 구하려고 많이 기다렸다. 집이 응암동 이였는데 거리도 중요했고, IT계열 회사가 판교, 강남, 가산쪽이였는데 가산쪽으로 가고 싶었다.판교 몇 군데서 면접제의가 왔지만 마음에 드는 곳이 없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맞는 직장의 기준은 어떻게 되나?

우선 거리적인 문제 그리고 내가 편하게 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 인지, 내가 발전하고 같이 성장 할 수 있는 지가 중요했다. 주어진 것만 해서 끝내는게 아니라 같이 성장하며 이상을 실현하는 회사를 찾았다.

 

 

 

그래서 결국엔 판도라티비에 입사했다.

느낌이 좋았다. 판도라티비는 과거에 동영상서비스 플랫폼으로 유명했다가 요새는 다시 준비해서 뛰려는 느낌이었다. 그 때문에 면접전에는 반신반의 했다. 면접을 봤을때 임원진이 계셨는데 면접을 보고 난 후 여기 괜찮다! 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판도라티비 IOS버전을 개발하고 있는 내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발에 치중할 수 있는 분위기 라던지 환경조성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쉽게 결정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예민한 질문일 수도 있을거라 생각하지만 대답해 줬으면 한다. 항상 모자를 쓰고 다니는데 그 이유라도 있나?

음.. 머리부분을 다쳤다. 그 부분을 사람들이 쳐다보게 되면 나도 그 시선을 의식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나만의 일을 온전히 집중 할 수 없을 것 같아 가리기 위해 모자를 쓰고 다니니 이해 바란다.

 

 

 

 모자를 쓰고다니는 이유가 있었다.

 

 

 

성실한 인터뷰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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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람이 전부다

 

 

 

(촬영 중인 카메라를 바라보며)

되도록이면 짧게 하자. 이거 보통 얼마나 하나??

 

시작부터 빨리 끝내고 싶어 얼마나 인터뷰를 하는지 궁금하다며 물어오신 황선원 과장님.

 

말이 빨라 따라가기 힘들었던 황선원 과장님.

 

어서 인터뷰속으로 들어가보자!!

 

 

 

 

 

만나서 반갑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모바일챌린지팀에 입사한 황선원이다. 안드로이드 개발을 맡고 있고 여러가지 배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많은 분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일이 있음 좋겠다고 생각한다.

 

 

안드로이드 개발자가 된 계기는 어떻게 되나?

안드로이드가 나오기전에 윈도우 모바일 개발을 했다. 스마트폰이 활성화가 될 것 같다는 판단에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그쪽으로 관련된 일을 진행 하면서 윈도우 모바일이 크게 뜨지 못하고 있다가 IOS와 안드로이드가 나오면서 사용자가 많아지더라. 그때 안드로이드와 IOS사이에서 안드로이드를 택했고 지금까지 오게 됐다.

 

 

스마트폰이 나오기전에는 어떤 개발을 했나?

2G핸드폰이 있을때일 것이다. 그때 UI설계프로그램을 개발 했는데 핸드폰 디바이스를 만들 때 UI 구성을 해야 하는데 보통은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으로 가이드를 만들게 된다. 그런데 그것을 프로그램화 시켜서 만들어주고 디바이스에 뿌려주는 형태였다. 디바이스에서 동작을 한다기보다 클릭했을때 어떤 화면으로 이동하는 그런 것이다. 이런것들이 폰에 들어가서 동작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어렸을때도 개발에 관심을 보였나?

어렸을때 부터 무엇인가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만들면서 익히는 부분이 많더라. 하드웨어 공부를 하게 되고 하드웨어를 컨트롤 하려면 소프트웨어를 공부하게 되고 그러면서 관심이 계속 생기며 기술을 습득하게 되는 이런 과정들이 좋았다.

 

 

 

 

 

 

인생의 가치관이 "세상에 해결방법이 없는 일은 없다."인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음... 회사 생활을 좀 오래 했다. 그러면서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다. 그 안에서 느낀 것인데, 해결방법이 없다고 가정을 세우고 들어가는 것 보다는 해결방법은 있다는 판단에 움직이는게 내 기분에도 좋고 안정감이 들어 일을 진행하게 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좋은방향으로 흘러가더라. 이런걸 몇번 겪고 나니까 그래 결국엔 방법이 있구나 라는 판단이 섰다.

 

 

 

개발자가 꿈인 친구들에게 해줄말이 있다면?

개발이 취미가 됐으면 좋겠다. 단순히 회사일만 해버리게 되면 시간이 지나 지루해지기 시작할때 안 좋은 생각을 갖을 수 있다.

이때 취미로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대한 공부를 하다 보면 이런 슬럼프를 극복하거나 시장에 대한 변화에 따라가기 쉽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무언가를 만들어 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기업에 들어가게 되면 프로젝트 일부분을 맡아 진행하게 되는데 이때는 큰 그림을 보기가 어렵다. 그런데, 자기가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해보게 되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것이다. 설령 그 결과물이 좋지 않더라도 말이다.

마지막으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개발은 다른 사람들이 도와줄수 있는 부분이 한정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만든 코드와 자기가 개발한 부분에 대한 확신을 갖고 책임질 수 있는 마인드를 갖춘다면 훌륭할 것이라고 본다.

 

 

 

개발작업에 몰두 중인 황선원 과장님

 

 

 

취미는 어떻게 되나?

낚시와 여러가지 수집하는 것을 좋아한다.

 

 

 

낚시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아버지께서 낚시를 좋아하셔서 중학교, 고등학교때 아버지를 따라다녔다. 당시엔 낚시가 좋아서 따라다녔다기 보다 가족이 함께 있는 것이 좋아서 따라다닌 듯 하다. 낚시에 관심을 느끼기 시작한건 전 회사에서 사수가 낚시를 좋아했었는데 사수랑 낚시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내 돈 주고 산 낚시대가 없었는데 이때 낚시대를 사게 되었고 점점 낚시를 좋아하게 됐다.

 

 

 

낚시를 가는 장소가 있나?

주문진을 주로 간다. 남해와 동해의 물이 맑아 바다의 기운을 느끼기 좋은 반면 서해는 물이 빠지면 내천 같은 느낌이 나서 좋아하진 않는다. 남해는 거리가 너무 멀어 가기 힘들다. 동해를 대중교통타고 가봤는데 쉽게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 주문진이더라. 생각 보다 좋아서 시간날때 바람쐬러 가기도 한다.

 

 

낚시하기 좋은 주문진

 

 

수집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씨앗을 수집한다. 어렸을때 단독주택에 살았는데 씨앗을 심고 키우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종자에 관심이 생겼다. 요즘엔 창가에 심어보고 자라는 것을 지켜본다. 마트에서 과일을 사서 씨앗을 뽑아낼 수 있는데 이 씨앗을 심었을때 싹이 나는지 안나는지 확인해 보는 재미도 있다. 그리고 씨앗을 장기 보관하려면 영하 10도정도에서 보관해야 하는데 냉동고에 보관하기도 한다.

 

 

마트에서 파는 과일의 씨앗을 심어 봤다고? 딸기도 가능하나?

물론이다. 딸기는 1주일 에서 10일 정도 기다리면 싹이 올라온다. 심은 그 해에는 딸기를 수확할 수 없고 다음해 부터 가능하다.

 

 

수집한 씨앗은 얼마나 되나?

70종? 정도 되는 듯 하다.

 

 

엄청난 양의 씨앗을 수집하고 있으시다!!

 

 

 

자취를 꽤 오래 했는데 외로움을 느낄때는 없나?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기 시작한 10년 전부터 자취를 했다. 주말에 딱히 할 일이 없을때 친구들과 약속을 잡지 못할때 외로움을 조금 느끼긴한다. 근데 집에있질 않고 주로 밖에 나가 돌아다니거나 뭔가 하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외로움은 잘 못느낀다. 그래서 같이 돌아다니거나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이상형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인사 부탁한다.

앞으로 여러분과 같이 일하는데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많이 도와달라. 그리고 재밌게 일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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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람이 전부다

판도라티비 임직원의 희소식이 날아 들었다!!!

 

바로 조식 무료 실시!!!

 

 

그럼 오늘은 무료조식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확인해 보러 가보자!!!

 

우선 식사를 하려면 지하2층에 마련되어 있는 구내식당을 가야 한다.

 

구내 식당은 2군데가 있다.

 

 

우선 첫번째 식당 부터 이동을 해보자.

 

웰스토리!!

 

 

메뉴들이 브라운관을 통해 보여지고 있다.

 

 

라면을 시식해 보기로 했다.

 

 

깔끔하게 정리 되어 있는 식당 내부

 

 

직접 음식을 갖고가면 된다.

 

 

즉석에서 라면을 끓인다.

 

사진상 으로 보이는 기계를 통해 아주머니께서 직접 라면을 끓여 주신다.

 

 

그리하여 완성된 라면!!

 

아침 한끼로 든든하다!

 

 

 

그리고 2군데 식당 중 다른곳을 체험하기로 했다.

 

나는 라면을 이미 먹었으니 도와줄 사람(펌프팀 정영환프로님)을 한명 불렀다.

 

 

밥을 먹기전에 식당카드(일명 밥카드) 태그 한다.

 

 

 

 

정영환프로님은 이곳이 어머니의 아침밥상 같다며 참 좋아한다.

 

식당 내부

 

 

 

분주히 일하시는 아주머니

 

 

이곳은 뷔페식이라 직접 식판에 먹을만큼 담으면 된다.

 

 직접 시범을 보여주는 정영환 프로님

 

 

아침밥이니 만큼 적당히 담는다.

 

 달걀후라이가 참 백미였다.

 

 

 

 

 

 마침 아침식사를 하시는 대표님을 볼 수 있어서 사진에 담아봤다.

 

 

 

대표님은 이곳에서 매번 아침식사를 하시니 사적인 대화를 하고 싶다면 이 곳에서 식사하기를 권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바빠서 아침을 못먹으면 테이크 아웃을 할 수 있는 샌드위치도 있다.

 

이곳에서 원하는 음료와 샌드위치를 고른다.

 

 

 

 

 

 

 

다양한 아침식사를 무료로!!! 무료로!!! 제공을 해주니 여러이유로 아침을 거르고 오시는 판도라티비 직원에겐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다음에도 좋은 복지로 찾아 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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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람이 전부다

같은 날 재무팀에 2명이 입사 했다.

 

누군지 궁금하니 어서 만나보자!!

 

 

 

날이 좋아 벚꽃이 흐드러지는날 인터뷰를 했다.

 

 

판도라티비에 입사 한걸 축하한다. 이름과 함께 자기소개 부탁한다.

재무팀에 입사한 31살 김홍기 이다. 처음이라 서툰 부분이 있는데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모습 모여주고 싶다.

 

 

 

가볍게 취미 부터 얘기를 해보자.

마라톤이 재밌더라. 최근에 시작한 건데 친구들과 같이 하면 좋더라. 저번 주엔 경주 벚꽃 마라톤에 참가해서 10키로를 완주 했다. 평소에 걷는 것도 좋아해서 동네 둔치도 잘 돌아다닌다. 작년에는 나이키런닝에도 참가 했다. 판도라티비 직원들도 시간이 되면 같이 뛰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 함께하시죠!?

(순간 손발이 오그라 들었다.)

 

 

 

마라톤을 한다고? 어떻게 시작했고 매력은 무엇인가?

재작년 부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걷다가 빠른걸음으로 걷고 그리고 뛰었다. 뛸때는 정말 아무생각이 안든다.

 

 

 

당연히 힘드니까 그런거 아닌가?

 그렇지만 그게 너무 좋다. 그리고 당시에 복잡한 일들이 많이 생겼었는데 그때 마다 뛰었던거 같다.

 

 

 

 

 

달리는 뒷모습이 아름답다.

 

 

 

 저 메달은 다주는 건지 궁금하다.

 

 

 

여자친구가 있다고 얘기를 들었다. 여자친구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

5년 동안 교제중이다. 대학교 CC다. 군대 전역 후 복학하고 만났고 현재는 역삼 게임회사에서 근무 하고 있다.

 

 

 

결혼한다고 하지 않았나?

원래는 내년 즈음에 하려 했는데 이래저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좀 미뤄 질듯 하다.

 

 

 

여자친구는 결혼 언제 하자는 얘기는 안하나?

그게 시기가 있는것 같다. 처음에는 내가 결혼 하자 해서 부담스러워 하고 나중에는 이왕 하는거 빨리 하는게 낫지 않냐고 하고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합의점을 찾아서 나중에 하자 라는 식으로 결정이 되어 버렸다.

 

 

 

경력직으로 입사 했으니 전 회사에대해 얘기를 좀 해보자. 이전 회사는 왜 그만 두었나?

전 회사에서 나의 포지션이 애매했다. 처음엔 본사소속 이였지만 계열사로 이동을 하게 됐다. 계열사에서 인사, 총무, 재무 등 많은 일들을 했다. 어느 순간 내가 무엇을 하는지 혼란이 왔고 회사 내에서도 불안감을 느꼈다. 본사에서 실적이 안좋아 졌고 계열사에서도 안좋아 지다 보니까 계열사를 없애려고 하더라. 그 곳에서 불안감을 느껴 그만 두게 되었다.

 

 

 

그때 업무를 보며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인사총무 업무를 했을 때 힘들었다. 재무는 딱 딱 떨여저서 좋았는데 인사총무는 그렇지 않더라. 만약, 교육을 잡는다 하면 모두의 스케쥴 관리를 해야 했고, 물품을 구매한다 해도 전 임직원의 욕구를 충족 시켜야 하니까 그게 힘들더라.

 

 

 

회사생활을 하며 갖게된 가치관이 있나?

전 직장에서 과장님께 들었던 얘기가 나의 가치관이 됐다. "내가 해준것은 모래 위에 새기고 남한테 받은 것은 바위 위에 새겨라." 내가 어떤 것을 했을 때 남에게 바라지 말고 내가 남에게 받은 것은 가슴속에 잘 새겨서 잘 보답해야 한다는 뜻이다. 앞으로 사회생활 할 때 누군가에게 바라고 의지 하는 것 보다는 내가 받은 부분에 대해 보답해주고 잊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결국 판도라티비에 입사하게 되었다. 팀장님은 어떤가?

너무 사무적일 수는 있으나 첫 인상이 너무 좋으셨다. 또, 팀장님께서 젊으셔서 대화도 좀 더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많이 도와 주시려고 하시는 것 같다. 실은 여기 와서 부담이 많이 됐다.

 

 

 

부담이 되었다고?

맞다. 채용공고를 보니까 3년 이상을 뽑더라. 근데 아직 그정도 까지의 경력은 되지 않아 과연 내가 그 정도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과 잘해야 겠다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부담이 되었다.

 

 

 

인상 좋은 팀장님과 같은날 입사한 재무팀 김경미프로님과 휴게실에서

 

 

 

입사하고 보니 느낌은 어떤가?

자유로운 분위기와 개방적인 사무실을 통해 IT스럽다는 생각을 받았다. 파티션이 없는 것에 놀랐고, 벽도 알록달록 원색으로 되어 있고 사무실 곳곳에 쇼파가 있어서 신선했다.

 

 

중간 중간에 쇼파가 놓여있다. 

 

파티션이 없는 판도라티비 사무공간

 

 

대표님께서 소통을 중요시해 파티션을 없앴다. 그리고 카페같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인테리어를 그렇게 했고 중간에 쇼파도 배치 했다.

그리고 채용 과정을 겪으면서 참 체계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전 직장에서 채용도 담당했었는데 그때는 1차 면접 보고 2차 면접을 진행했던 반면에 판도라티비는 1차 면접 보고 레퍼런스체크를 하고 인적성 검사를 하고 중간 중간 결과를 정윤아프로님께서 문자도 주시고 메일도 주시고 메일안에는 약도도 포함되어 있어 좋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블로그를 보게 됐는데 복지랑 회사의 문화를 알 수 있어서 IT답다 라고 느꼈다. 면접자로서는 사전에 회사의 정보를 알 수 있어서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구내 식당이 있는 것도 좋았다.

 

 

 

구내식당을?

전 직장에선 점심 마다 메뉴 고르는게 곤욕이였다. 주변에 비싼 음식도 문제였고 상사에게 점심메뉴 추천하는 것 도 은근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제 가족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형제는 어떻게 되나?

막내고 위로 누나가 3명이 있다. 큰누나랑 나이 차이가 제법 나는데 12살 위다. 큰누나가 중학생때 결혼을 해서 많이 보지는 못했다.

 

 

 

부모님은 뭐하시나?

부모님께서는 옛날에 가방공장을 운영 하셨다가 현재 아버지께서는 육가공 쪽에서 영업하시고 계시고 어머니께서는 집에 계신다.

 

 

 

가방공장은 어디서 하셨나?

망우동에서 하셨다가 면목동에서 하셨다가 계속 움직이셨다. 처음에는 직원을 20명 정도 있었다. 러시아로 수출도 하고 잘 됐다. 케릭터 가방도 만들기도 했고 미찌꼬런던 가방도 만들었다. 그러다 중국의 저가 공습으로 인해 내리막 길로 갔다.  

 

 

 

가방공장을 서울 안에서 안하시고 경기도 외곽 하남 이런데서 땅사서 창고 두고 했으면 대박 났을텐데 아쉽다.

그러게 말이다. 아버지 아시는 분들은 그렇게 운영하시다가 현재는 컨테이너만 올려놓고 임대료 받으면서 잘 살고 계시더라.

  

 

 

올해 목표를 들어보자.

평상시 해외여행을 못 다녔다. 올해 오사카 여행을 처음 가봤는데 너무 좋더라. 올해 해외 여행을 가보고 싶다.


 

왼손에 커플링이 유독 반짝인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많이 부족할 텐데 너그럽게 잘 봐주고 잘 부탁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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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람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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